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당신은 멍도 잘 든다.

그러기엔 좀 아까운 애니까. 내 쪽으로 감아볼게.지금 제가 미친 짓을 하고 있는 건 알아요.근데 저 형 더 이상 속이면 안 될 것 같아요.” “내가 누굴 믿을 수 있겠어?네, 앞으로 절대 저를 믿으라고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형을 믿어요.그렇지 않았다면 네가 지금 내 옆에 없었을 거야.형이 저한테 총을 쐈잖아요. 괜찮을 리가 없어요?내가 정말 뭔가에 홀린 것 같다.

그래, 처음부터 내가 널 죽였어야 했어. 맞아 끝까지 모르지.불단은 범죄 느와르라는 외피를 둘러싸고 있다.

조폭 교도소 마약밀수 러시아 마피아 잠입조 어머니 아들 목적을 위해서라면 조폭 못지않은 형사까지 범죄영화의 전형적인 클리셰 투성이다.

그러나 그릇이 같아도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음식은 달라진다.

불단은 느와르 그릇에 남자의 의리 대신 사랑을 담았다.

중년 조폭 재호는 아기, 꼬마, 딸처럼 생긴 ‘혁신적 바보’ 현수가 마음에 든다.

자기라고 부르고 자신을 아저씨라고 부르는 현수에게 발끈 화를 내며 형이라고 부르라고 한다.

재호는 현수에게서 눈길을 끌지 못하고, 둘은 불덩이 두 개처럼 붙어 달걀 깨기도 하고 야구도 하고 바닷가에서 불꽃놀이를 하며 놀고 서로 때린다.

작업 중에는 현수가 험악한 모습을 볼까 “자기 나가”라고 말하고, 혼자 작업을 하는 현수가 걱정돼 안절부절못하며 진입해 “자기야, 꺼냈어!
”라고 외친다.

답답할 때는 함께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가서 자신만의 은신처와 과거를 공유한다.

미혼모 아들, 동반자살을 시도한 엄마에게서 살아남는 아이, 버림받는 데 익숙한 두 사람은 조폭과 경찰이라는 로미오와 줄리엣급 사실상의 연애를 한다.

밀폐된 엘리베이터 안에서 러시아 조폭을 만나러 가는 재호의 넥타이를 만지는 현수. 짠 것을 만나고 온 현수를 의심하며 몸을 수색하는 재호. 엘리베이터 벽에 눌려 거친 숨을 내쉬는 재호와 현수. 머리와 손, 어깨 아래로 내려가면서 더듬는 재호의 손은 의심스럽기보다는 에로틱하다.

최선의 조직을 펴고 나서 너를 꺾어 서로 주고받는 ‘야, 이것 좀 빨리 치워봐’, ‘날 깨워줘 형님’의 대화는 경찰의 도청으로 소리만 들리지만 역시 거친 숨결이 더해져 묘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재호와 현수의 나이차, 체격차, 거칠고 예쁜 외모차, 멋진 정장, 빨간 머스탱 컨버터블, 직접적이지 않아도 충분히 섹시한 접촉. 아무래도 감독이 BL 웹소설 독자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BL 애독자에게만 보이는 요소가 많다.

현수를 곁에 두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도 서슴지 않고 절친까지 거침없이 내던지는 지나친 애정까지. 친구라는 명분으로 사실 재호를 사랑하는, 재호 이야기를 하면 천진난만하게 즐거운 고상무의 질투가 더해지면 완벽한 BL 서사가 완성된다.

잘못이 드러나기 전까지는 아무도 잘못한 게 아니다.

이런 개 같은 일에 당하는 놈이 나쁘고 그게 나쁜 거야.경찰이든 조폭이든 나쁜 놈들은 착한 사람을 망친다.

“너와 나 같은 애는 죽어도 이해가 안 돼”라고 말하는 다정한 현수는 엄마를 위해 팀장의 무리한 작전을 수행해야 했고, 가장 큰 고통 속에서 힘들어할 때 호의를 건넨 재호의 범죄를 도왔지만 돌아온 건 거짓과 배신뿐이다.

현수는 팀장에게는 실적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됐고, 편이라 생각했던 재호에게는 마음을 이용당했다.

당하는 자가 나쁜 일이고 나쁜 일인 세상에서 현수 역시 나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사람이 아닌 상황을 믿는다”고 한 재호는 현수를 믿는 실수를 저질렀고, 혼자 남은 현수는 앞으로 더 이상 상사에게 이용당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의 거짓말에 속지 않는 “더 나쁜 놈이 될 것이다.

한낮 머스탱에 기대어 미소짓던 따뜻한 재호로 시작된 영화는 한밤중 머스탱에 기대 앉은 무표정한 차가운 턱걸이로 끝난다.

그렇게 세상은 불단만이 살아남는 나쁜 놈들의 세상이 된다.

이뤄지지 않는 사랑과 범죄 이야기는 세밀하고 아름다운 디테일과 재치 있는 대사의 유머로 예쁘게 포장된다.

재호와 현수가 만난 교도소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본 미국 교도소를 한국식으로 재현한다.

훨씬 질이 좋아 보이는 황토색 수의에 스타디움 점퍼형 죄수복까지 있다.

담배를 둘러싼 교도소 내 알력, 부정교도관, 쇠창살로 둘러싸인 야외운동구역, 넓은 복도와 독방 모두 완전히 미국식인데 그게 어색하지 않다.

어차피 영화는 픽션이니까 영화 의도에 맞게 상황을 끌고 가면서도 그렇다고 완전히 가짜처럼 보이지 않게 재현을 넘을 것 같은 현실로 재구성했다고나 할까. 정장을 입은 조폭이나 마약 밀매를 하는 선내나 최성장의 은신처 모두 할리우드 영화에서 본 익숙한 모습이지만 섣부른 흉내가 아닌 세련되고 그럴듯해 보여 몰입감을 높인다.

반면 중간에 던지는 재치 있는 대화와 과도한 액션은 디테일하고 정색적인 느와르에게 재미를 더한다.

“아, 왕도 대통령도”, “대통령은 임기가 있잖아요.”내가 잘못했어. 냉면은 평양냉면인데 다칠 뻔했잖아 나 죽을 뻔했어. 그 돈을 만들려면 한 달 정도 걸린다, 하나의 이사, 하나님은 세상도 6일 만에 만들었는데. 경찰, 해경, 세관에 특수기동대까지 이건 완전 블록버스터다 그럼 흥행만 시키면 되겠네.’길복순’과 ‘불한당’에서 변성한 감독은 세련된 디테일과 코믹한 대사, 뻔한 이야기를 참신한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독보적인 연출력을 선보였다.

여느 한국 영화와는 다른 자신만의 색깔이 뚜렷이 보인다.

그런데 ‘불한당’의 경우 개봉 당시 감독의 SNS상 문제적 발언으로 평점 테러를 당해 손익분기점도 넘지 못하는 사태를 초래했다고 한다.

제작비를 지원받아 블록버스터를 만들어놓고 흥행만 시키면 되는 상황에서 왜 그런 생각 없는 일을 했을까. 영화에서 풀려난 현수에게 네 것이라며 나타샤를 불러 머스탱 뒷좌석에서 벌인 키스신도 논란이 된 듯하다.

잘생긴 남자들의 사랑 얘기를 하면서 굳이 여자를 물건처럼 넣는 이유가. 그럼에도 그렇게 파묻히는 영화는 아니었지만 길복순의 흥행 덕분에 뒤늦게나마 볼 수 있어 다행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SNS는 인생의 낭비인 것 같아. 하마터면 멋진 슈트 스타일을 자랑하는 연상 설경구와 연하 임시완의 러브라인을 놓칠 뻔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xLsnS0RtJw&pp=ygUi67aI7ZWc64u5OiDrgpjsgZwg64aI65Ok7J2YIOyEuOyDgQ%3D%3D